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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후_뉴 디자인(II)

영국 : 새로운 단순함 영국의 아방가르드 디자인에서 형태와 재료들은 몇 가지 관점에서 독일의 뉴 디자인과 비슷하다. 이탈리아의 '멤피스' 운동이나 우아한 프랑스와는 달리 영국의 '뉴 디자이너'들은 오히려 거친 재료들이나 다듬지 않은 철, 또는 시멘트 등을 사용했다. 또한 대부분 단순한 재료와 형태 언어를 이용해 네오바로크주의들의 '새로운 화려함'에 빠져 있던 뉴 디자인의 다른 경향들과 구별되었다. 영국의 뉴 디자인을 대표하는 인물은 아라드, 모리슨, 딕슨 등이었다. 이스라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아라드는 1981년 런던에 자신의 스튜디오 '원오프 사'를 설립했는데, 그 이름은 단일품의 생산과 판매에 일치하는 것이었다. 아라드는 다양한 재료들을 실험했으며, 또한 레디메이드를 갖고 작업했다. 지프에서 뜯어낸..

카테고리 없음 2022.11.09

모던 이후_멤피스와 광란의 1980년대

멤피스 1981년 '알키미아'에서 분리되어 그룹 '멤피스'가 형성되었다. 멘디니의 이지적인 계획과 사물들이 미술품적인 특성에 환멸을 느낀 소사스, 브란치, 데 루키 등은 '스튜디오 알키미아'를 떠났다. '멤피스' 또한 사물과 사용자 간의 감각적인 관계를 중심에 두었으나, 극단적으로 기능주의를 부숴 버리는 선언, 유토피아, 도발적인 단일품 등만을 끄집어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멤피스' 디자이너들은 '알키미아'와는 달리 소비, 산업, 광고, 일상 등을 인정했다. 그들에게는 모던에서 포스트모던 사회로의 빠른 전환이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멤피스'의 가구들은 분명 대량 생산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멤피스 그룹에서는 에토레 소사스 외에도 안드레아 브란치와 미켈레 데 루크, 마테오 툰, 마이클 그레이브스,..

카테고리 없음 2022.11.04

디자인 역사 모던 이후

모던에서 포스트 모던으로 안티 디자인의 급진적 운동들은 1960년대 말, 대중 매체를 통해 많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몇 년이 지나자 그 대부분이 이렇다 할 소득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처음에는 사회 비판적이었던 팝 가구들도 그저 유행을 타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는 여전히 해마다 '연방 정부의 굿 포름 상'을 수여했다. 저항 운동이 부연 준 유토피아는 산업 사회의 구조들에 비해 나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쨌거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1970년대의 수많은 새로운 미적 영향들로 인하여 다원주의라는 기호와 양식의 폭넓은 다양성이 생겨났는데, 이것은 '굿 포름'과 기능주의의 독단적인 주장들에 대해 다양한 생활 양식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이러한 다원주의..

카테고리 없음 2022.10.31

디자인 실험과 안티 디자인

실험, 유토피아, 그리고 안티 디자인 1960년대는 소비 사회와 기능주의가 절정기를 이루었으며, 중반 이후부터는 그 위기의 징후들이 하나둘씩 분명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이더니 1973년의 석유 위기와 함께 1970년대가 시작되었다. 소비 사회 비판 대량 생산에 대한 낙관적 태도와 현대 디자인의 순수한 합목적적 합리주의를 점점 더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자본주의에서 디자인의 역할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많은 디자이너들이 더 이상 '산업의 하수인'이기를 거부하고 독립적인 실험 활동을 하면서 사회 개념들의 영향을 받아 정치 참여에 관심을 가졌다. 미국의 베트남 정책 반대, 프라하의 봄, 유럽의 학생 운동 등도 디자이너를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1970년..

카테고리 없음 2022.10.31

굿 포름과 벨 디자인

'굿 포름'과 신기능주의 울름 조형 대학은 여러 가지 결과들을 낳았다. 우선 1960년대의 독일 디자인에서 기능주의와 '굿 포름'은 다양한 교육 기관과 디자인센터, 그리고 디자인 협회 등에서 빈번히 노골적이고도 독단적으로 주장하는 스타일의 원리가 되었다. 울름 조형 대학의 강사들은 브라운, 비트소에, 로젠탈 등의 회사와 손잡고 일했는데, 그 회사들의 제품은 전 세계적으로 '굿 포름'과 '독일 디자인'의 전형이 되었다. 기능적이고 기술적인 측면들이 디자인에서 전면으로 부각되었고,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자신을 조형 미술가라기보다 엔지니어로 이해했으며, 인간 공학이 새로운 활동 영역으로 등장했다. ※빌헬름 바겐펠트(1900-1990) 독일 현대 산업 디자인의 아버지이자 '굿 포름'의 대표적인 주창자이기도 하다...

카테고리 없음 2022.10.30

디자인 역사_1950~60년대 북유럽

스칸디나비아식 주거 문화 실험을 즐기는 이탈리아의 디자인과 미국의 '스타일링', 독일의 신기능주의 외에도 스칸디나비아의 디자인 또한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생활 문화를 특징짓는 코드였다. 스칸디나비아의 가구와 생활용품들은 1930년대에 이미 디자인되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코펜하겐의 은세공 제품이나 핀란드의 이탈라와 아라비아 등의 회사는 지금까지도 안락한 시민 문화의 표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1951년 밀라노 트리에날레에서 핀단드 제품들은 탁월한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영국이나 미국, 독일 등에 비해 산업화가 늦어졌기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까지도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의 가구 문화에는 상대적으로 끊이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던 수공업적 ..

카테고리 없음 2022.10.29

디자인 역사_1950년대 전후 독일(2)

울름 조형 대학 1950년대의 가장 중요한 시도는 울름 조형 대학으로 1920년대와 1930년대의 민주적인 독일 디자인 전통을 계승하여 현대적이고 포괄적인 고유한 디자인 개념을 이루려 했다. 울름 조형 대학은 숄 남매 재단에서 설립했는데, 이 재단은 저항 단체 '백장미'의 회원이었던 한스 숄과 조피 숄 남매가 국가사회주의자들에게 처형된 사건을 기리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이 학교는 의식적인 면에서 반파쇼적이고 구제적이며 민주주의적인 것에 기초하고 있었던 만큼 학생과 교사들 역시 세계 각국에서 모여들었다. 울름 조형 대학은 1953년에 강의를 시작했으나 공식적인 개교는 1955년에 이루어졌다. 초대 교장이었던 막스 빌은 이 학교가 교육적으로나 내용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인 관점에서도 바우하우스를 계승하는 것이라..

카테고리 없음 2022.10.27

디자인 역사_1950년대 전후 독일(1)

독일: 재건에서 경제 기적까지 독일은 나치 정권이 계속되는 동안 국제적인 디자인의 발전으로부터 단절된 채 편협하고 고루해졌다. 바우하우스 대표자들은 망명을 떠났고 산업은 전쟁으로 파괴되거나 해체되었다. 가구 산업은 다른 산업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즉흥적으로 대처해 나갈 뿐이었다. 우선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부터 충족되어야 했다. 1949년의 화폐 개혁 이후 개최된 첫 번째 가구 박람회에서는 1930년대의 전형들을 이어 나가려는 듯 보였다. 가구 생산업체들마다 옛 도안과 모델들을 지속시킬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무거운 소파나 찬장들은 새로운 상황에 맞지 않았다. 전쟁으로 500만 채 이상의 주택이 파괴된 현실에서 디자인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가볍고 가변적이며 다기능의 가구..

카테고리 없음 2022.10.26

1950년대 디자인 역사_이탈리아

이탈리아의 경제 기적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디자인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이탈리아는 전쟁 이후 가장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고, 1950년대부터는 디자인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탈리아의 디자인은 여전히 미래파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지만, 어쨌거나 모던한 스타일이었다. 독일과 달리 이탈리아에서는 산업화가 상당히 늦게 진행되었고, 전쟁 이후에야 수공업적 생산에서 산업적 생산으로 이행되었다. 게다가 전통적인 남북 격차의 문제가 깊어졌다. 밀라노나 토리노 같은 선진 산업 도시들은 부유한 북부 지방에 위치해 있었으며, 전쟁 이후 10년에서 15년에 걸쳐 수출과 디자인의 중심적 역할을 하며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이탈리아의 유연함과 저임금, 미국의 재건 지원 사업(당시 미국의 국무..

카테고리 없음 2022.10.25

1950년대 디자인의 역사_전후시대

1950년대 지금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전후 시기와 1950년대는 '약동의 50년대'로 미화되어 있으며, 정치뿐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은 우선 재건에 여념이 없었다. 전후 초기에는 식량, 주택, 경제 건설, 국가와 행정 재건 등 기본적인 욕구부터 충족시켜야 했다. 회사들은 거의 모두 해체되었고, 자원과 노동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사회적이고 창조적인 이상향들은 독일과 제3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프랑스나 네덜란드 등에서는 나치 정권에 의해서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스탈린 체제에 의해서 단절되었다. 미국은 전쟁의 피해를 모면한 유일한 승전국으로서 경제 개발을 주도했고 1950년대까지 선두적인 디자인 국가..

카테고리 없음 2022.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