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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개혁운동 아르누보 낭시 발랭

벨기에 브뤼셀은 이미 일찍부터 진보적인 미술가들과 디자이너들의 중심지였다. 미술가 그룹 '레 뱅'과 '자유미학'은 1880년대에 이미 로댕, 비어즐리, 르동 같은 미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물론 윌리엄 모리스의 직물과 카펫 등도 빠뜨리지 않았다. 아르누보의 두 거장이라 할 수 있는 건축가 반 데 벨데와 오르타 역시 이 부류에 속했다. 브뤼에설에서는 아르누보의 장식 기술 또한 일찍부터 3차원적으로 전용되었다. 오르타는 처음이자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아르누보 건축의 선례를 선보였다. 그는 런던의 수정궁(1851년)과 파리의 에펠 탑으로 유명해진 강철 빔과 유리를 사용했고, 아르누보의 식물 문양들을 표면 장식으로, 더불어 구조적인 요소로 집어넣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민중의 집'(1896-99), ..

카테고리 없음 2022.09.29

윌리엄 모리스

윌리엄 모리스는 산업적인 대량 생산을 크게 반대했다. 환경 오염, 소외된 노동, 조악한 대량 생산 제품 등 산업화의 결과들을 타락한 자본주의의 졸작으로, 그리고 인간의 적으로 보았다. 그는 사회주의를 신봉했지만 혁명가는 아니었다. 그는 미적인 폐해들과 사회적인 폐해들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비판하며 그 해결책으로 미술 공예 개혁 운동을 추진했다. 이는 미술과 공예가 밀접하게 결합한 상태에서 미술가들이 쓸모 있고 아름다운 생활용품들을 만들어 냈던 중세를 재성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리스는 미적으로 수준 높은 생활용품들을 수공업적으로 생산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역사주의의 조악한 장식에다 자연에서 나온 장식과 재료, 그리고 명료하게 정리된 형태들을 대립시켰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최초의 참여적 환경..

카테고리 없음 2022.09.27